2211 신효민






화연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은 아침이었다.

천지가 우리 반을 영영 떠나버린 날도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왔던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애써 담담한 것이 그 무게를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주제에, 더 가벼운 무거움에 손을 뻗어 깊이를 느끼려 한 것 부터가 기만 같았다. 학생이 다쳤는데 경중을 따지고 있는 꼴이 부끄러워 잠시 수화기 너머의 사소한 몇 마디를 흘려보내고 말았지만, 나는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몇 배는 커다란 한 아이의 시간을, 한 가족의 시간을 흘려보내고야 말았다.



.... 선생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많이 힘드실 텐데 화연이 다 나을 때 까지 학교 일은 걱정 마세요. 네, 네. 들어가세요.



영겁 같았던 찰나를 수화기와 함께 내려놓고 나니 문득 자업자득이지 않은가 하는 나쁜 생각까지 들고야 말았다. 어디까지나 내가 아무런 관계조차 없는 타자였다면 자연스럽게 할 만한 생각이다. 적어도 교사로서 학교 땅 위에 서 있는 작자가 해서는 안 될 생각일 뿐이었다. 오히려 자업자득이라 함은 천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 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고서도, 차라리 내밀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인 어설픈 손길을 내민 나를 바라보고 해야 할 말에 가까운 듯 싶었다. 지금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면 분명 거짓말이겠지만 도와달라고 말 한 마디 다 못 하고 스러진 그 아이에 비할 바가 되진 않을 것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려 주듯이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푸른 창가는 야속하게 맑기만 했다.



천지는 정말 성실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 하고 착해서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그러려니 하고 안일하게 넘겼던 것 같다. 수업시간에 낙인을 통한 따돌림과 배제를 주제로 당찬 목소리로 발표하던 천지는 마지막에 "혹시 당신도 예비 살인자가 아니십니까?" 라는 말로 발표를 맺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의 진짜 뜻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눈과 목소리는 화연이를 비롯해 모든 반 아이들에게, 방관자들에게, 어쩌면 담임인 나에게까지 내질러졌던 것이다. 그것을 들은 화연이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그 이후로 교실의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확실했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 비밀스럽게 불러내서 할 말 못할 말을 주고받았을 터이다. 누구나가 그걸 알아차린다는 건 의도적으로 묻어버리는 것도 역시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선생이랍시고, 그놈의 선생이랍시고 내가 했던 일을 돌이켜 보면 천지를 괴롭히던 아이들의 무리와 다를 바가 한 치도 없는 것이다. 어머님, 화연이가 천지 조금 괴롭히는 거 같아서요. 떼어 놓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따위의 상투적이고 성의 없는 말들. 미라가 천지와 싸웠을 때도 둘이 그냥 껴안고 조금 토닥이면 화해할 줄 알았다. 떨어지랬다, 붙으랬다... 화연이나 미라나 전부 천지에게는 같은 공기조차 마시기 싫은 사람인 줄도 모르고 유치원 아이들 대하듯 어물쩡 넘겨 버린 것이다. 이런 결과로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

꿈, 꿈이라. 그러고 보니 이따금 꿈에 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지는 웃음도 울상도 않는 미묘한 표정으로 저 멀리서 항상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다.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도, 더 가까이로 뛰어가도 거리가 변하지는 않는다. 내 잘못으로 갈라진 이승과의 거리인 걸까? 한참을 뛰다 지쳐 멈추어 서서 나도 천지를 가만히 바라보면 꿈에서 깨곤 했다.

아이들은 천지를 잊은 척 하는 듯 보였다. 꽃이 놓인 그 자리를 지나갈 때면 불편한지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이 가증스럽다 이를 수 없었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침묵과 평소대로의 적당한 활기가 대류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교실 뒷문이 열린다. 여느 때와 같이 소란스러운 아침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들은 위화감이 흐르는 공기를 곧잘 느끼고 일제히 뒤를 보았다. 십수 쌍의 무구한 눈동자가 향한 곳에는 화연이가 서 있었다.



그 전날 화연이의 어머니께서 예전보다 배는 수척해져 야윈 목소리로, 화연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기억상실증을 진단받았다고 수화기 너머로 말을 전했다. 이 사실을 아는 나는 곧 조례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에게도 같은 소식을 전할 것이다. 다시 방관자들의 무리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음에도, 나는 해맑게 반 아이들을 향해 눈웃음짓는 화연이가 어쩐지 소름끼쳤다.  아이들은 천지를 잊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아니, 그것은 정확히 화연이를 물어뜯기 위해 묻힌 천지를 파내는 모습에 가까웠다. 방관자들의 무리가 다시 도래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었다. 자업자득이라 다시 생각하기에는 어딘가 크게 뒤틀리고 있는 모양새다. 천지가 바란 건 이게 아닐 것이다. 그 착한 아이는 화연이를 용서하지 않을지라도 똑같은 아픔을 겪다가 똑같은 결말을 맞는 모습을 결코 원하지 않을 아이였다.
 굳이 천지의 속마음까지 헤아릴 필요 없이도, 자기를 그토록 괴롭혔던 사람을 저승에서조차 마주봐야 하는 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미 내 잘못으로 멀리 떠나 버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천지를 위해서라도, 속죄라는 이기적인 독단 때문이더라도 나는 화연이가 기억을 되찾도록, 천지 곁으로 가지 않도록 도와야만 했다. 선생 된 도리로 나는 이 이상 어떤 아이도 떠나보낼 수 없었다.
 화연이는 이미 내가 이런 다짐을 곱씹어야 할 정도로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다. 천지가 아이들을 보며 짓던 떨떠름한 표정과 아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화연이가 천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되갚음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연이는 당연히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미 떠나간 천지조차 돕지 못했는데 믿음이 갈 리가 없다.
 
선생님. 저 조퇴시켜 주세요. 
.. 많이 힘들지?

아니라고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는지 화연이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진짜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데 애들이 저만 괴롭혀요. 솔직히 기억이라도 나면 미안해하는 척이라도 하겠는데.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다 나보고 미쳤다고만 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조퇴시켜주는 대신에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뭔데요?

무슨 부탁인지 감도 안 잡힌다는 듯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화연이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천지의 유품이 담긴 상자였다. 학교에 있던 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넣어 뒀었다. 이제 온기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화연이가 그 집으로 가면서 실낱같은 기억이라도 찾아내길 바라서였다. 

이거 천지네 집에 갖다 줘. 천지 살아있을 때 쓰던 물건이야.
이걸 왜 저한테 시키세요? 다른 애 시켜도 되잖아요. 
조퇴하기 싫어? 아무리 기억이 안 난다고 해도, 넌 빈말로라도 천지가 네 단짝이라고 했었어. 책임은 져야지. 

화연이는 마지 못해 상자를 받아들고선 고개를 푹 숙이고 밖으로 향했다. 당연히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크게 몰아붙일 생각은 아니었다만 왜인지 그 뒤는 천지가 잘 해결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창가로 들어오는 파란 하늘은 맑다.

화연이는 천지네 문을 두드렸다. 현관 앞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옅게 들리더니 잠깐의 정적 후에 천지의 언니인 만지가 한숨을 쉬며 나왔다.

이거 선생님이 갖다 드리래요. 
너한테 시켰어?
네.

만지는 얼굴을 잠시 찌푸리더니 상자를 열어 빠진 물건이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화연이에게 그냥 가 보라고 말하려고 입을 떼다 상자 구석에 있는 새빨간 털실을 찾은 만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털실을 집어들었다. 서둘러 털실을 풀려 손을 댔다가 잠시 멈칫하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분명 네 번째 털실이다. 첫 털실은 천지가 엄마에게, 두 번째 털실은 천지가 만지에게, 세 번째 털실은 천지가 미라에게 남긴 유서가 각각 담겨 있었으니까. 

이 털실, 네가 끝까지 다 풀어 봐.

화연이는 영문도 모른 채 만지의 기에 눌려 무어라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털실을 풀었다.  털실이 풀릴수록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털실을 다 풀고 나서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다면 예전으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확신이 일고 있었다. 끝내 샛노란 메모지가 화연이의 발치에 떨어졌다. 화연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만지가 눈을 으쓱이며 신호를 보내자 떨리는 손으로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 전부 용서하고 갈게. 더 이상 아무도 힘들지 않기를, 너도 힘들지 않기를. '
 
천지가 화연이에게 남긴 유서였다. 
화연이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돈만 써 대면 어디든 놀러 오던 친구들이, 평생 영원할 것만 같던 친구들이 천지가 죽고 난 이후에는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를 집요하게 죄어 왔다. 똑같이 아프면서도 나는 잘못 없고 너희도 공범이라고 외치던 바보 같은 자신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천지는 나를 용서했다. 모두를 용서했다. 허나 그것이 내가 과거를 잊고 살아가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기억해야 했다. 나 때문에 천지가 죽었다는 걸 추하게 변명하지 말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화연이는 만지를 올려다보는 듯 아니면 그 너머를 올려다보는 듯 허공에 대고 연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알아듣기도 힘든 발음으로 울며 소리친다. 
작고 아늑한 아파트 복도 틈으로 들어오는 하늘 빛은 여전히 맑다.